[여안선방]
만약 꼭 물들여진 것(바뀔 버릇)으로 내가 보이거나
꼭 음성(사라질 가짜 뜻)으로 나를 파악하면
이 사람다움은 틀린 방식을 씀이니
본성인 채로 보일 수 없다.
금강경의 이 사구게는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며,
'이 뭣고?'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가르키고 있다.
무엇을 '뭣고?'하는가는 무슨 의미나 뜻을 갖고 하는 의혹이 아니라
어떤 뜻(논리적 의미)도 없는 다만 '이 뭣고?'하는 그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다.
그랬을 때 그 반응 만 인식되는 것이니
인식이 되면 또 뜻(의미)이 개입되니 다시 '이 뭣고?'하면 된다.
이...? 하면 '뭣고?'는 저절로 된다.
이...? 이 뭣고?에 의미를 두고 하면 틀린 방식이다.
뭣고?를 하다가 의문이 사라질까봐 붙들려고 애를 쓰게 되는데
이것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.
애를 쓰는 것은 겪고 지나가야 할 과정이긴 하나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.
뭣고?는 가장 좋고 평안하게 해야 한다. 진짜 뭣고?는 본심과 내가 같아 질 때이다.
우리 본래 마음이 가장 좋고 평안함이 늘 물흐르듯이 그렇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
가장 평안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.
여기에 무슨 사심이 있겠는가?
이 뭣고?를 하는데 어떤 변화하는 뜻이 없이 가장 평안하게,
어떤 애씀도 없이 숨쉬는 호흡 만 느껴지듯이
그렇게 의문으로 공간이 꽉 채워지면 진짜 뭣고?가 되고 있는 것이다.
가장 평안하게 '이 뭣고?' 할 수 있어야 바른방식을 씀이니
본성인 채로 보일 수가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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